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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VERYWHERE EVERYWHERE > 김준곤목사 저서 > 딸의 죽음(한영합본)  
 
딸의 죽음(한영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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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  김준곤
출판사 :  순출판사
판   형 :  126*185 / 144p
출판일 :  2019/09/27

 
   

김준곤 목사가 첫재 딸의 위암 투병과정에서 경험한 은혜들을 기록한 자서전적 신앙고백 에세이다. 저자는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신심으로 정화시켜, 신앙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병마의 고통에, 인생의 제로점에 처한 모든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언어도, 행동도, 존재조차도 정지된 어떤 제로점에 선 것이다. (Be nothing, do nothing, say nothing)십자가 상의 주님을 쳐다본다. 가시관 밑으로 피가 빗물처럼 줄줄 흐르고 있다. 침묵과 침묵, 주님의 제로와 나의 제로, 주님의 고통과 내 고통, 주님의 죽음과 내 죽음과 신희의 죽음이 만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언어, 행동, 생각, 존재조차 정지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뒤에 생각해냈는데 나는 주님이 섭섭했던 것이다. 그리도 가냘픈 아이에게 그리도 가혹한 고통을... '주여...'하고 부를 힘이 없었던 것이다.

 
   

책을 내면서/ 72

 

1부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79

위암4기의 극한 고통/ 81

거절당한 기도/ 85

피묻은 사랑의 고백/ 89

존재조차도 정지된 제로점에서/ 93

세상 욕심을 묻어버린 곳/ 98

 

2부

"저 구름 위에 엄마가 있어? 우리를 보고 있어?"/ 105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 108

정하의 일기장/ 113

새엄마와의 첫 만남/ 117

 

3부

삶과 죽음/ 125

부록 Queen잡지 1998년 8월호 "나보다 더 사랑해서, 더 필요해서 더 좋은 곳으로 그애를 데려가신 주님"/ 130

 
   

 유성 김준곤 목사는 1925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먼 친척뻘 되는 낙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에게 첫 복음을 들었다. 만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봉천신학교에 입학을 했으나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끌려가다가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극적인 탈출을 시도해 만주에 있는 김인석 목사(성결교 총회장 역임) 집에 피신해 있으면서 김 목사가 소장한 2,000여 권의 신학, 철학, 문학서 등을 읽고 영성과 지성의 깊이를 경험했다. 해방 후 조선신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다가 자유주의신학사건으로 51인 학생들과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다. 1950년 10월 공산좌익에 의해 부친이 학살을 당하고, 아내(인정진 사모)가 순교를 했다. 김준곤 목사도 거반 죽음의 상태에서 국군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됐다. 김 목사는 부친과 아내를 죽인 공산좌익들을 예수 사랑으로 용서하는 탄원서를 올렸다.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목. 교장을 거쳐 미국 풀러신학교 유학 중 국제CCC 설립자 빌 브라잇 박사를 만나 한국CCC 사역을 제안받고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창설했다. 그때부터 소천 때가지 매일 아침을 금식하면서 민족복음화와 통일 한국을 위해 기도했다. 김준곤 목사는 1962년 대학생 선교를 기반으로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1965년 2월 국회조찬기도회 창설 1996년 3월 8일 도통령조찬기도회를 만들어 정. 관. 재계. 주한 외교사절 복음화에 나섰고, 민족 복음화운동의 제3의 집단으로서의 나사렛형제들 창설(1968년 8월), 전군신자화 운동(1969), 민족복음화운동 선언(1970년 12월 31일 밤 0시), 민족복음화요원 1만명  강습회(1971년 8월, 대전충무 체육관), 엑스플로 '74대회(1974년 8월13일, 32만 3419명 전도훈련), 59,000 자연부락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랑방 운동 등 민족복음화 운동을 주도했다. 1980년 8월에는 세게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하여 10만 선교사 파송을 선언했다. 또한 조선 일보와 동아일보에 1979년 10월 부터 1981년 9월까지 2년간 '예수칼럼'을 매일 연재하면서 파스칼의 '팡세'에 필적할만한 글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문서선교의 획기적인 장을 열었다.

 

이후 '84 세계기도대성회, 엑스플로 '85를 개최했으며, 1990년 7월과 8월 필리핀에 3,000명의 대학생을 단기선교사로 파송 하여 한국교회 단시선교사 시대를 열었다. 김준곤 목사는 또한 1995년 5월 세계선교대회(GOOWE Ⅱ)를 개최하여 10/40 윈도우 지역의 미전도종족 선교 전략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그 기간 중 10만 대학생통일봉사단 발대식을 갖고 통일한국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후 기독교민족화합운동본부 상임대표, 2002 월드컵기독시민운동협의회 대표회장, 사랑의 다리운동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북한 43,000마을과 영친운동,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 상임공동대표, 북한사랑의옷보내기 운동, 북한 젖염소보내기운동 등을 전개하며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돕기와 북한 동포돕기를 전개했다. 김준곤 목사는 그가 제창한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선교를 몸소 실천했다. 김준곤 목사는 마지막까지 한국대학생선교회 이사장 및 총재, 성시화운동총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공동대표로 섬기다가 2009년 9월 29일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그의 한맺인 기도와 꿈을 우리에게 남기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김준곤 목사는 조선대 문학과, 장로회신학교, 미국풀러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국립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세종대학교에서 명예교육학박사, 명지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는 민족화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 '리바이벌'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 '예수칼럼'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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